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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默居慧德 2019. 12. 20. 18:51

우리는 인생을 궁금해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칩니다.
한 평생을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게 하지만 태어난다는 일만을 생각해도
고생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겪는 작은 상처에도 사느니, 못사느니 합니다.
그리고 큰 병고에 시달리든가 평생을 함께 의지하던 이의 이별과
죽음에 부딪쳤을 때 오는 고통과 마음의 아픔은
눈물로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즐거움 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입니다.

환희의 시간은 기억에 없고 오늘도 정해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이 길을 왜 가야하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인생을 그저 안개 낀 다리를 건너는 사람과 같이
어림 짐작으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웃고 즐기며 삽니다.

이렇게 인생을 모르면서도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인생 역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즉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행동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나와 남에게
준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에게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용한 광야를 걷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왔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어
급한 나머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우물에는 마침 칡넝쿨이 있어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 내려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밑에는
다시 무서운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위를 쳐다보니
코끼리가 아직도 우물 밖에서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칡넝쿨에만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위에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온 몸에 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칡넝쿨을 잡고
위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나타나 칡넝쿨에 집을 지었다.
그러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데 그는 꿀 맛에 취해
왜 꿀을 더 많이 떨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성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칡넝쿨은 생명,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합니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하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오욕락(五慾樂)을 말합니다.
오욕이란 재물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애욕, 먹을 것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욕망, 편안함의 추구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욕망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보다 욕망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욕심은 지혜를 흐리게 합니다.
이러한 장애를 없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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