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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가 좁으면 들어 설 자리도 좁다. 본문

법문(法門)

울타리가 좁으면 들어 설 자리도 좁다.

默居慧德 2020. 1. 7. 09:34

"울타리가 좁으면 들어설 자리도 좁다.


많이 쌓고 싶으면 울타리를 넓게 쳐라.
더 많이 쌓고 싶으면 
아예,
울타리를 허물어라.
열린 마음은 강하다."
 
석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으시고
연기(緣起)의 법을 설하시길,
"돌고 돌아가는 세상천지의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의 화합으로 생멸하는 존재이므로 
고정돼 불변하는 자성(自性)이 없다." 고 하셨고
또,
수많은 경전을 통해 "공(空)"을 강조하셨다. 
"나"라고 할 것이 본래 없고(空), 
따라서,
내가 한 일이란것 또한 결국엔 없음(空)을 
일깨워 주심으로써 
"무위의 삶" 
즉, 
"자유인의 길"을 열어 보이셨다.

하나,
오늘의 우리는 석가가 설해 주신
"자유인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마음"을 너무 좁게 쓰기 때문이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마음 씀씀이의 옹졸함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 모두는 본래 열린 마음이었고
빈 마음이었다.
하나,
"나"를 앞세우다 보니까 
본래의 열려있던 마음이 
닫힌 마음에 덮혀져 결국 닫히게 된 것이다.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중생의 자기 사랑이란 
참다운 사랑이 아니다. 
뒤집힌 꿈일 뿐이다. 
그리고 그 꿈은 온갖 번뇌를 길러내는 
자기 속박의 온상이다. 

예컨대,
아만과 아집이라는 것만 버려도, 
소위,
자존심이라는 것만 버려도 
삶이 얼마나 홀가분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짜증 낼 일도,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진정 자기를 사랑하려거든 
빈 마음이 돼라. 
열린 마음이 되라. 
잘 안되거든 노력하라. 

되는 것 보고 
잘 된다고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마음공부가 아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수행이요 
공부다. 

그것이 곧,
하심(下心)이다. 

빈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상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 주위를 둘러가며 쳐져 있는 울타리를 헐고 
저 넓은 들판 같은 마음이 되는 것이다. 
허공 같은 마음이 되겠다는 것이다. 

진정 자기를 사랑하려거든 
아만·아집·아상을 버려라. 
그것이 참된 수행의 길이요 
불법 공부의 길이다. 

그래야,
중생인 나로 서가 아니라 
참나로서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알게 된다. 

무위의 삶을 살아가는
의미로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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