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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인과(因果)

默居慧德 2020. 4. 27. 15:32

 

열매와 씨앗은 하나이면서 다르다.
굳이.
원조를 따진다면 닭과 달걀의 논쟁이 됀다.
그러나 씨앗이 열매가 되기까지는 거듭되는
긴 시간과 공간적인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씨앗이 반드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확신이 없듯이 
열매 또한 꼭 씨앗이 되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씨앗 없는 열매가 있을 수 없고 
열매 없는 씨앗도 있을 수 없다. 

버스의 출발점은 곧 종점이요, 
종착역 역시 시발역이다. 
일의 시작은 끝을 목표로 하고 
일을 끝내면 새로운 시작이 있다. 
그렇다면 시작과 끝은 하나의 과정일 따름이지 
단절의 의미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인(因)은 종자이며 시작이며 출발이다. 
연(緣)은 환경이며 과정이며 가꿈이다. 
과(果)는 결실이며 완성이며 종점이다. 

뚜렷한 신심으로 계획에 의한 방법을 실천하며 
튼튼한 떡잎을 잘 보호하고 
성장과정에서부터 환경이 잘 조성되면 
기대 이상의 결실을 거둘수가 있다. 

하루가 시작되는 동트는 아침의 기분, 
한주를 여는 월요일의 명랑한 표정, 
그 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초하루의 굳은 의지, 
한 해의 결실을 바라보는 
연초의 희망찬 계획의 밝은 미래를 향해 시작된다. 

열심히 노력할 때 저녁과 주말과 월말 
그리고 연말에 알찬 결과를 가져다 주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는 기쁨과 
더 높은 포부를 갖을 수 있다. 

자! 
이제 한 해의 마무리를 지으며 
지난 날을 점검해 보고 새로운 한 해의 계획을 
착수할 준비를 다듬어야 한다. 
돌아보자, 
그리고 참(懺)으로 잘못을 찾아내고 
회(悔)의 마음를 다짐하며 
다시는 
하루 하루를, 
거듭되는 주말을, 
한 달을 
헤아릴 틈도 없이 연말이 찾아와 
어느덧 덧없이 흘러버린 해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실패를 거듭하지 말자. 

이 세상 누구도 나를 뉘우치게 할 자가 없고 
아무도 나의 앞길을 보장해 줄 사람은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책임질 뿐이다. 

결국 나의 허물도 내가 찾아내고 
나의 잘못도 스스로 고쳐나가야 한다. 
만약 나를 위하여 꾸짖고 채찍질을 해준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은혜로운 사람이며. 
나는 참으로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게 되리라. 

혜능선사가 
육조단경(六祖檀經)에서 말씀 하시길, 
입에 쓴 것은 좋은 약이오. 
귀에 거슬림은 반드시 충성된 말이다. 
허물을 고치면 지혜가 생기고, 
단점을 보호하면 마음이 어질지 못하다. 
苦口的是良藥, 逆耳必是忠言 
改過必生智慧. 知心內非賢 

속담에도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린다"고 하였다. 
자기의 허물을 
뉘우쳐 고칠 줄 아는 지혜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부처님께서 
어떤 사문(沙門)에게 묻기를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 있느냐?"고 하시니, 
한 사문은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하고, 
또 다른 사문은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하고 
또 다른 사문은 
"호흡하는 사이에 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부처님께서 앞의 두 사문은 
아직 도(道)를 모른다고 하시고는 
세 번째 사문에게 
"너는 도를 아는구나." 하시었다.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이 호흡지간이며, 
한 호흡이 멈추면 뒷 호흡이 따를 수 없어 
생명은 끝나게 된다. 

한 호흡 다음의 호흡도 기약할 수 없는 
생명의 주인이 
어찌 다른 사람의 허물까지 탓하고 
비웃을 겨를이 있겠는가?...
인간은 참으로 영리한 듯하지만 
대단히 어리석은 동물이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생명에게 참회가 무엇이며 
잘못이 있는지를 물어보라. 
오직 인간만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이 세상의 멸망도 사람이 자행할 수 있으니 
자기 죽을 줄 모르고 세상을 마구 더럽히고 있다.
 
자성(自性)이 어리석으면 중생이요 
자성을 깨달으면 부처다. 
자성은 
곧 마음의 모든 작용을 하는 왕과 같은 것이다. 
즉, 
중생도 부처도 마음에 있고, 
천당 극락의 아름다운 세계도 
지옥의 무시무시한 고통의 세계도 
오직 나의 한 마음 성품에 있는 것이다. 

사고를 갖춘 모든 생물체에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기관은 사람이 사람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삶의 질은 교육만이 향상시킬 수 있다. 

부처님의 교육은 교육 가운데에서도 
심성(心性)교육으로써 
마음을 깨달아 부처되게 하는 교육이요 
지옥을 부수고 천당극락을 건설하는 작업장이다. 

부처님께서는 연기법(緣起法)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일어날 수 없다"고 하는 연기법을 
인간 스스로가 깨달으면 
누구를 원망하고 
어디를 보고 탓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자신의 심성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시작도 끝이요, 
끝도 시작이다. 
어디가 끝이며 무엇을 시작이라고 일컫겠는가? 
모든 것이 이 "한 마음"의 작용이요, 
한 찰나의 장난인 것을. 
찰나의 시간도 
이처럼 엄청난 생사(生死)를 가름하는데 
어찌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한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데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흘릴 수 있겠는가? 
태어남도 시작이 아니요 
죽는다고 끝이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기억이 생생한 것은 
마음의 본 자리는 변함이 없고, 
늙고 병들어도 마음본성은 죽지 않는다. 
한 방에 앉아 전등의 스윗치를 켰다껐다 해보라. 
깜깜한 방과 밝은 방은 
등불의 켜짐과 꺼짐에 따라 
모양과 이름이 다를 뿐이지 방은 변함이 없듯이,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이치가 이렇듯이 
마음의 참등불을 켜는 것과 꺼진 것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지혜와 어리석음, 
천당극락과 지옥의 괴로움도 이와 같으니 
한 마음 밝게 깨쳐 
즐거움의 미래를 내 손수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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