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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로 가려진 나의 본래 모습 본문

법문(法門)

부채로 가려진 나의 본래 모습

默居慧德 2020. 5. 29. 16:55

彩雲影裏神仙現
手把紅羅扇遮面
急須著眼看仙人
莫看仙人手中扇
오색 비단구름 위에 신선이 나타나서
손에 든 빨간 부채로 얼굴을 가리었다.
누구나 급히 신선 얼굴을 볼 것이요
신선의 부채는 보지 말아라.

생각해 보십시오.
신선이 나타나기는 나타났는데
빨간 부채로 낯을 가리였습니다.
신선을 보기는 봐야겠는데
낯가린 부채만 보고
신선봤다고 할것입니까?

모든 법문이 다 이렇습니다.
“정전백수자” (庭前柏樹子) 니
“마삼근”(麻三斤) 이니
“조주무자”(趙州無字)니 하는 것은
다 부채입니다.부채 !
눈에 드러난 것은 부채일 뿐입니다.

부채 본 사람은
신선 본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신선을 보려면
부채에 가려진 그 얼굴을 봐야지,
빨간 부채를 보고서
신선 보았다고 하면
그 말 믿어서 되겠습니까?

.........

위의 내용은,
성철스님께서 설해주신
법문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부채로 가려져있는
신선의 얼굴을 보기위해
불자가 됀것이지
부채를 보고 얼굴을 보았노라
왈가왈부하기 위해서
불자가 됀것이 아니다.

부채 너머의 얼굴을 보기위한
수행방법은 여러가지 있다.
허나 그 중에서,
화두참구가 최상의 밥법이다.

화두참구하는 방법에는
요령도 없고 요행도 없다.

한걸음 한걸음 내 딛으며
더디게 나아 가더라도
자신이 직접 느끼고,
헤쳐나고, 배워가며,
그렇게 스스로 닦아가는 것이다.

부채를 보고 얼굴을 보았노라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일주문의 내력도 망각한체
불문에 들어와서도
세속의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
경전 몇 줄 읽고 이해 할만하니
신선의 얼굴을 보았노라
의기양양 거들먹거리며
부처를 팔아먹고
양심을 속여가며
불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수박의 달콤한 맛을
먼저 먹어본 사람이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그맛의 온전한 느낌을
매일매일 설명해 준다한들
그 어쭙잖은 설명으로는
수박의 진솔한 맛을
온전하게 가르쳐 줄수 없다.
오히려,
설명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듣고 배우려는 불자들을
방황의 구렁텅이속으로
몰아 넣을수가 있다.

팔만사천 석가의 설법은
해답이 아니다.
수많은 조사스님들의 조사어록도
해답이 됄순 없다.
어디까지나 근본욧점일뿐이며,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등댓불일 뿐이다.
그 불빛을 따라서 의심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닦아가야 한다.
원하는 해답을 얻는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선문에 들어서는 이들에게
"살부살조(殺父殺祖)”라 하여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고 가르친다.

과정을 갗추려보자.

먼저,
발심을 한 이라면,
꼭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대원력을 세워야 하고
경전과 계율과 어록을 읽고
기초를 튼실하게 쌓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선지식을 찾아가
근본방향을 파악해야 하고
화두를 받아 지니고,
화두드는 방법을 배워 익히면서
그 가르침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방향을 파악하고나서
본격적으로
화두참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면
이제부터는,
그동안 의지했던
경전과 어록과 계율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화두참구중에도
경전과 어록에 얷매인다면
살부살조(殺父殺祖)의 가르침을
망각하는 꼴이며
크나큰 병폐가 돼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강을 건너고 나면
땟목에서 내려야 하는데
땟목에서 내리질 못하고
거기에 앉아서
세속적인 이해타산의 장단을 맟춰가며
도를 닦는다면
그만큼 논리와 망상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부채를 보고 신선을 보았노라
거들먹거리는 꼴이 됄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경전과 계율과 어록에서
방향을 파악하고나면
경전과 계율과 어록에서 벗어나
오직
화두의심 하나에 올인하고
간절한 심성으로 참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참구하다
어떠한 사소로운 의구심이 생기거나
화두가 아닌 어떤 경계에 부닥치거든
언제든 선지식에게 물어야 한다.

그때그때 물어서
그 의심을 해소시켜가며
간절하게 참구해야 한다.
맘속에 오로지
화두참구 하나로 채워야 한다.

선지식은,
당신이 그동안 올곧게
화두참구해 오신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아들을 향한
어미의 심성으로
가르쳐 주실 것이다.

경전(經典)을 달통한 강사(講師)도 있고
선(禪)으로 단련됀 선승(禪僧)도 있으니
경학에 입문을 하려거든 강사를 찾고
선(禪)을 배우려면
선승(禪僧)을 찾아야 한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마음공부는 선지식에게 가야 한다.
겉으로 드러내질 않을뿐
우리주변에는 선지식이 많다.

가득한 쌀독의 쌀을 노리는
절박한 쥐의 심성이 돼라.
야근야근 파들어가는
피땀어린 노력으로
오직,
쌀을 먹고야 말리라는 일념으로
그렇게 화두를 참구 해야만
대원을 성취할것이다.

하안거결제일도
한달 미뤄진 윤사월 초파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뜨거운 햇쌀 피해
그늘에 앉아 잡초 뽑으며,
사시때 제불전에 공양 올리며
토굴에서 나홀로 좌복 지키고 앉아
화두참구하면서 팔자 늘어지게
한철 열심히 살아 가리라.

우리,
함께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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