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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법문(法門) (19)
hanju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형상에 집착해 온갖 관념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비워라, 마음을 비워라. 길은 본래 누구에게나 훤히 열려 있다.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웅덩이 속 올챙이가 개구리에게 뭍은 어떠냐고 물었다. 개구리가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지만 올챙이는 뭍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은 할 수 있어도 흙냄새나 풍경은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다. 나중에 개구리가 되어 스스로 웅덩이를 벗어났을 때라야 뭍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처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듣는다 해도 스스로 마음을 열고, 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올바른 길을 볼 수가 없다. 남이 일러준 길은 길이 아니다. 상상의 길일뿐 실제의 길은 아니다. 부처님 말씀이 가득한 경전은 다만 지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길을 찾고 ..
가장 길다운 길, 자유의 길, 진리의 길, 해탈의 길은 닫힌 마음을 여는 데서, 고정관념을 비우고 순수하고 천진한 눈과 귀로 사물을 대하는 데서 시작된다. 길을 찾으려거든 한 생각 돌려서 덕지덕지 달라붙은 고정관념부터 떼어내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자기"라는 관념에 매달려 제 좁은 소견을 애지중지하면서 그것을 보람 있게 사는 길이라 믿는다면 길은 영원히 보이지 않을 것이다. 끝내, 흙냄새를 맡아보지 못하고 우물 안에 갇힌 올챙이로 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욕망에 끄달리지 않으며 분별없이 의미로의 살아가는 그런 우리네 삶이 참된 삶이라… 하지만, 그리하지 못하고 분별과 욕망의 끄달림 그 한가운데에 서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아 가는 게 우리네 현실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험난한 인생길의 쉼표가 필요한 것이지요.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한해의 마침표가 아니라 인생의 쉼표입니다. 그 쉼표에서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채근하여 다시 박차고 오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게 송구영신의 희망 가득 찬 마음으로 2019년을 보내시고 2020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토굴 한주선원에서 묵거혜덕 두 손 모음.
선사들의 가르침중에 "올곧은 수행을 위해서는 편함을 쫒지말고 몸뚱이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실제로 많은 조사스님네들께서 그리하여 깨달음을 얻으셨으며 고행없이 쉽게 깨달음을 얻은 이는 많지 않다. 다만, 고행을 위한 고행이 되어서는 아니되며 스스로 고행이라는 생각이 없을 만큼 자기 스스로의 힘겨운 생활에 만족할줄 아는 원만하게 전념이 되어 무리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몸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 없는 초보자로서는 몸과 타협하여야 하는 면이 있으므로, 자신의 근기에 맞추어 주고 바른길로 이끌어 주는 선지식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래서 불법에 귀의한 불자라면 대발심과 대용맹심으로 무장하고 반드시 선지식을 참례하여 올바른 길로 배우고 익혀 나아가야 할것을 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다. 허나. 오래전부터 무엇이든..
우리 중생계 인간의 삶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네가지 고통(四苦)이 있으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의 고통. 미운 사람과 만나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의 고통.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의 고통. 그리고, 오늘 설명 하고져 하는 오음성고(五陰盛苦)의 고통을 합쳐서 이름이다. 오음성고(五陰盛苦)란?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육체적 괴로움과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라는 세가지 정신적 괴로움을 합쳐서 요약하면 결국, 오음성고(五陰盛苦)라는 한 가지로 귀결된다. 사고팔고중에서, 생노병사는 육체적인 괴로움이며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부득고는 정신적인 괴로움인 반면에 오음성고는 육체적· 정신적인 괴로움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오음은 오온..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께서 팔리어를 한글로 번역하신 대념처경(大念處經)에서 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인가? 비구들이여, 태어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태어나는 법이 있지 않기를! 참으로 그 태어남이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이라고…. 그러나, 이것은 원함으로서 얻어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것도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늙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병들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죽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을 하기 마련인 중생들에게 이런 바람이 일어난다. “오 참으로 우리에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하는 법이 있지 않기..
석가가 말씀하신 팔만사천 법문중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인생의 고통중에 대표적인 것이 원증회고(怨憎會苦)와 애별리고(愛別離苦)이다. 이전에 올린 글에서 말한 애별리고(愛別離苦)는 너무나 사랑하는 자식,부부,연인,친구이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고통이라면 오늘 설명 하려는 원증회고(怨憎會苦)는 미움과 증오와 스트레스가 가득하지만 이 미운 사람을 안볼레도 안볼수없는 고통을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 주변에 미운사람이 없을수도 없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컥해오는 그런 원한에 사무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가막힌 운명으로 그런 사람을 매일 보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해야 끝나는 그런 피치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석가가 설하신 중생사 모든 고통의 근본 가르침인 사고팔고(四苦八苦)중에서 애별리고(愛別離苦)에 관해 설명해 보기로 하자. 먼저. 사고팔고(四苦八苦)의 뜻은, 석가가 사대문을 나가 직접 보게됀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네 가지 고통. 즉, 부모님 몸을 빌려 잉태(孕胎)하여 태어날 때까지의 생고(生苦), 출생 후 죽을 때까지의 늙어가는 노고(老苦), 병 들었을때 몸과 마음에 받는 병고(病苦), 목숨이 다할 때의 사고(死苦) 이 네가지 고통을 합쳐서 "사고(四苦)"라고 하고 여기에다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자식들과 이별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인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인 오..